클래식의 힘을 되짚어보다, '온고' 권형준 셰프
조한슬 기자
stert1207@naver.com | 2024-09-25 15:20:18
온고를 오픈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저는 역사 깊은 제과점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늘 사람들에게 권형준이라는 개인이 아닌 어떤 집안의 사람으로 평가받았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는 과자에 대한 사람들의 진솔한 반응이 궁금했고, 제 가슴속에 진실하게 품고 있던 과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후 집안에서 독립하고 매장 오픈을 준비하며 과거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요. 정말 운이 좋게도 훌륭하신 아버지와 스승님 밑에서 방대한 양의 일을 배웠지만, 그것을 충분히 복습할 시간 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이라는 뜻의 속담 ‘온고지신’을 인용해, 수많은 복습과 반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매장의 상호를 ‘온고’로 지었습니다. 조금은 속도가 느릴지라도 꾸준히 기술을 연마하다 보면 훗날 ‘지신’에 걸맞은 미래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온고에서 다루는 제품은 물론 오늘 수업에서 소개한 13가지 제품을 살펴보면 유행의 흐름을 따르기보다 클래식함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2007년 한국에서 가업을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일본 도쿄에 위치한 프랑스 전통 과자점 ‘오봉뷰탕(Au bon vieux temps)’에서 8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과 명인 카와다 카쓰 히코 셰프의 가르침을 받으며, 프랑스 향토 과자에 대한 논문과 역사책을 읽고 그 원형에 대해 깊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보냈죠. 그때 얻은 깨달음은 훌륭한 과자를 만드는 데 기술적, 디자인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과자가 어떤 풍토와 기후, 문화에서 기인했는지 알고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온고의 운영 방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제품이 클래식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간과한 채 트렌 디하고 인기 많은 매장의 제품을 분석하는 데 급급해 한다는 생각이 들 어요. 스스로 과자의 기본 구성과 공식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다른 매장에서 만드는 과자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는데 말이죠.
세미나에서 단순하게 제품의 레시피를 소개하기보다, 그 원리와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레시피 가공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레시피를 어떻게 가공하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배합표에 적힌 숫자의 의미를 하나하나 탐색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장에서는 점점 레시피 설계업자를 만들어 내려고 해요. 그들은 좋은 레시피라며 마치 프라모델을 조립하듯 몇 도의 오븐에서 몇 분 동안 구우면 되는지 제시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에서 만난 참가자들에게 레시피를 가공하는 방법에 대해 안내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소개된 구움과자들 이 하나하나 단독의 제품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 레시피를 가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숙지해야 할 기본적인 지식들, 예를 들어 이탈리안 머랭을 만들 경우 몇 도까지 끓여야 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 그 온도까지 끓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세미나 진행 시 참가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소통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세미나 참가자들과 함께 소통하며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려 했습니다. 이건 비단 제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조건 내가 옳아. 이건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주장도 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 할 때, 기술적인 면은 물론 삶의 측면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태어난 순간부터 제과점을 잘 운영하기 위한 훈련을 거듭해 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손님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는 것이죠. 이 부분은 과자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매우 큰 단점으로 작용했고 괴로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다른 페이스트리 숍을 방문해도 제품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제품을 분석하곤 했죠. 이제는 이런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기 위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더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이 일이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매장을 방문하여 편안하게 제품을 맛보고, 젊은 셰프들과 소통하기도 하며 말입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제가 다루는 과자의 오리지널리티를 깊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조한슬 기자 stert12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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