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세요. 그리고 열정을 다하세요."-대한민국 제과 명장 8호 함상훈 명장
박혜아 기자
hyeah0112@gmail.com | 2024-09-24 17:26:57
1959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난 함상훈 명장은 막연히 선망했던 제빵사라는 꿈을 확고히 하고자 서울로 상경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선택한 한국제과학교에서 그는 ‘명보제과’에서 견습을 할 기회를 갖는다. 지금은 사라진 명보제과는 명보극장과 함께 충무로에서 운영되는 대표적인 빵집 중 하나였다. “당시에 흥행작이 있으면 극장을 찾는 고객들 줄이 을지로5가까지 이어졌어요. 그 사람들이 다 어디 가겠어요? 빵 먹으러 오고 팥빙수 먹으러 오죠. 주말이면 빙수만 1천 5백 개씩 파는데 그 팥을 쑤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어요. 10평 남짓한 공장에 25명이서 일하는데 설거지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요. 듣자하니 명보제과에서 한때 근무했던 김충복 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했다는데 ‘나는 언제 빵 기술을 배워서 그렇게 되나’하는 생각이 드니까 조급해지더라고요.” 함상훈 명장은 남들이 마다하는 일들을 찾아서 먼저 했다. 금요일 저녁마다 주말에 판매할 빙수용 팥을 밤 늦게까지 끓였고, 연탄불로 가동하는 오븐이 잘 작동하게 하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불을 땠다. 성실한 자세가 책임자 눈에 들어 함상훈 명장은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허드렛일에서 벗어나 기술다운 기술을 터득할 수 있게 됐다.
박찬회 명장과의 만남
함상훈 명장은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2번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박찬회 명장과의 만남이다. 명보제과로 스카우트된 박찬회 명장은 함상훈 명장에게 있어 선배이자 좋은 기술을 알려주는 스승이기도 했다. “김충복 선생님이 크림으로 짜 놓은 꽃을 보고 일주일만에 똑같이 따라해낸 유일한 기술자라고 소문이 자자했어요. 그런 사람이 내 상사로 들어왔다니, 운명이다 생각하고 죽어라 배웠죠.” 어깨너머로 선배의 기술을 보고는 남들이 퇴근하고 쉬러 들어간 시간을 함상훈 명장은 훈련의 시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1인자의 뒤꽁무니만 쫓으면 잘해야 2인자이므로 스승을 넘어설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이다.
말로만 듣던 김충복 과자점에 들어가다
1970년대 후반, 한국 제과점들은 ‘태극당’, ‘고려당’, ‘성심당’처럼 ‘당(堂)’으로 끝나는 상호가 많았다. 불문율 같은 규칙을 깬 이가 바로 김충복 선생이다. 제과 명장들의 선배이자 국내 제과 제빵 1세대 기술자로 꼽히는 그는 국내 최초로 ‘김충복 과자점’을 개점하며 사장의 이름을 내건 상호를 유행시켰다. 함상훈 명장은 당시 여러 지점의 김충복 과자점 중 가장 장사가 잘됐던 뉴코아 백화점 지점에 입사한다. 함상훈 명장에게 모토는 ‘생각하면서 일하자’였다.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오븐으로 열을 가해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더 생산성이 높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지금도 출강하는 학교 학생들이나 매장 직원들한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에요. 이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하고 일을 하라는 겁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과 내가 필요성을 느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다릅니다. 그 차이는 1년, 2년 시간이 누적될수록 더 크게 나게 돼있습니다.”
6년 6개월간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보여줬다고 판단한 함상훈 명장은 연봉 6천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서울대입구역에 위치한 ‘구라파 과자점’에 스카우트된다. 구라파 과자점 대표는 당시 4억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빵집을 리뉴얼 해 그에 맞는 기술자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한두명도 아니고 3명이 모두 함상훈 명장을 추천하자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기대를 증명하듯 함상훈 명장은 150만 원이었던 일 매출을 500만 원까지 끌어올린다. “기술만 좋아서는 매출을 드라마틱하게 높일 수 없어요. 직원 관리, 생산 관리 등 관리 역시 중요합니다.” 이 역시 지금도 학생들과 직원들에게 매일 하는 이야기다.
함스브로트 오픈 그리고 또 다른 꿈
함상훈 명장은 드디어 1999년 5월, 그간의 노하우를 농축한 ‘함스브로트 과자점’을 오픈한다. 김충복 과자점과 구라파 과자점에서 보여준 케이크 데커레이션으로 팬덤을 확보한 함상훈 명장이 드디어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건 케이크를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화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꽃 케이크는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함스브로의 시그니처 상품이 된다. 함상훈 명장의 유명세와 더불어 그에게 접근하는 사업 제안도 많았다고 한다. “함스브로트 지점도 여러 개 내고, 베이커리 카페도 하고, 사업체를 더 키우면 돈도 많이 벌고 좋겠죠. 하지만 덩치가 커지면 쉽게 움직이기 힘들어요. 자유롭게 시간 빼서 학교에 가서 학생들 만나고, 가르칠 수 있는 것 다 가르쳐주는 삶이 저는 더 좋습니다.” 함상훈 명장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바로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국외식과학고등학교의 출강에서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반짝이는 눈으로 듣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과거 본인의 모습을 봤고,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게 상당한 보람이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함상훈 명장은 *명장 공방이 설치된 5개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일주일에 3~4회씩 명장 강의를 진행한다.
*교육부에서 2014년도부터 시작된 사업으로 대한민국 명장이 고등학교에 설치한 공방에서 1년 동안 학생들에게 직접 기술을 전수한다.
“요즘 시대는 포기가 너무 빨라요. 기왕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3개월만 견뎌보라는 거예요. 몸을 적응시키고 난 다음에 포기를 하든 열심히 하든 해보세요. 그리고 생각을 하면서 일하세요. 그때부터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옵니다. 모두에게 24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니,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운용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미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겁니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박혜아 기자 hyeah01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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