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스며든 디저트” - Chef 유인경

박다솔 기자

bbbogiii24@gmail.com | 2024-09-24 17:31:39

젊은 감각을 가진 셰프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영N스윗’. 누군가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데일리소유(Daily Sohyoo)’의 유인경 셰프입니다.


셰프님의 베이킹 인생이 궁금해요.

어찌 보면 뻔할 수 있지만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같은 기념일 챙기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방산시장에 가서 초콜릿 몰드나 각종 재료들을 직접 사 왔고 그 재료들로 집에서 초콜릿이나 빼빼로를 만들어 선물했죠. 친구들과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며 맛있게 먹어주던 기억이 제과에 대한 첫 좋은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제과와는 전혀 다른 진로로 직업을 선택했어요. 그러다 때마침 제가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뚱카롱 열풍이 불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마카롱에 빠졌죠. 이곳저곳 유명한 디저트 숍들을 돌아다니며 뚱카롱을 먹으러 다녔습니다. 뚱뚱하게 쌓아 올린 버터크림과 달콤한 꼬끄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확실히 실력 있는 가게들은 이 맛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잘 풀어내더라고요. 그 맛을 보고 나니 저도 한 번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원룸에 꽉 들어차는 우녹스 오븐을 사서 열심히 마카롱을 구웠습니다. 제 나름대로 마카롱에 익숙해질 때쯤 우연히 프랑스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을 접하게 되었고 제가 알던 뚱카롱의 원조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며 충격을 받았어요. 손바닥만 한 꼬끄 속에 소박하게 담겨있는 가나슈, 정말 신세계였거든요. 비주얼적으로 너무 사랑스러웠던 것은 물론이고 이 작은 디저트가 이토록 거대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죠. 그때부터는 클래식 마카롱의 세계에 더 깊이 빠졌던 것 같습니다.

‘데일리소유’ 오픈기가 궁금해요.

클래식 마카롱의 세계에 빠져있을 무렵, 서울 망원동의 ‘미완성 식탁’, 행당동의 ‘드소영’ 등 마카롱으로 유명한 가게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다양한 디저트 숍들을 다니다 보니 제가 직접 마카롱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데일리소유(Daily Sohyoo)’를 오픈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전에 다른 업장에서 근무해본 경험도 없고 창업이나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참 서툴렀지만 용기를 가지고 무모하게 시작했어요. 자금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월세가 싼 곳을 찾다가 방배동 8평의 반지하 상가에 자리를 잡게 되었죠. 처음에는 오로지 클래식 마카롱만 판매할 생각으로 매장을 오픈했어요. 이후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연구하다 타르트를 같이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2020년 2월에 정식 오픈했으니 벌써 햇수로 3년 차인데요, 마카롱은 물론이고 타르트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잊지 못할 인생 디저트가 있나요?

‘메종엠오’의 ‘몽블랑 엠오’.

‘메종엠오’의 ‘몽블랑 엠오’가 제 인생 디저트예요. 메종엠오는 제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곳인데, 당시 몽블랑 엠오는 하루에 약 6개 정도만 만드는 시그니처 디저트였어요. 따로 예약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먹기 위해서는 오픈하기 1시간보다도 훨씬 전에 가서 줄을 섰어야 만했어요. 밤 크림과 머랭을 주재료로 해서 만든 디저트인데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위치한 만년설의 산 몽블랑을 형상화한 머랭이 포인트였죠. 먹자마자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지는 머랭, 달콤하면서도 진한 밤크림, 맨 밑에 있는 상큼한 레몬 마멀레이드가 주는 풍미까지 완벽했어요. 머리가 짜릿할 만큼 달콤한 디저트였는데 평소에 단 맛을 그리 즐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디저트를 제작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세요?

아무래도 디저트는 밸런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입 안에서 어느 한 가지 맛이 튄다거나 너무 달거나 신맛에 치우치는 것은 지양하려고 합니다. 쁘띠 갸또를 만들 때 가장 즐거운 점이 다양한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아 하나의 맛으로 완성한다는 점인데요. 다양한 구성의 맛들이 모여 밸런스 좋은 하나의 디저트로 완성되는 것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맛의 조합들은 직접 테스트를 다 해보시는 편인가요?) 실제로 테스트를 많이 해보기도 하고 재료에 관한 책을 읽거나 다른 디저트 숍, 파인 다이닝을 방문해서 직접 먹어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또 하나 저만의 팁이 있다면 저는 카페 음료 메뉴에서도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스타벅스 시즌 메뉴에 오렌지, 얼그레이, 베르가모트를 사용해서 메뉴를 낸 것을 보고 제 디저트에 접목해 보는 거죠. 매 계절별로 시즌 메뉴를 선보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변화를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디저트가 있나요?

사실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만들어 보던 메뉴가 있는데요. 오페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오페라는 시트, 가나슈, 버터 크림을 층층이 쌓아 올린 어찌 보면 단순한 디저트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면 맛도 비주얼도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테스트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언젠가는 만족스러운 저만의 오페라를 만들어 출시하고 싶습니다. 

셰프님의 최애 디저트가 궁금해요.

다 제 자식 같아서 한가지 최애 디저트를 딱 뽑기는 어려운데 굳이 뽑자면 ‘몽블랑’ 인 것 같아요. 3년 동안 가을 시즌 마다 선보였던 몽블랑은 밤 파운드 베이스에 달달한 밤 무스, 둘세 가나슈, 샹티이 크림, 밤 크림, 헤이즐넛 크럼블, 레몬 제스트로 마무리한 제품이에요. 몽블랑은 이미 많은 디저트 숍에서 판매하는 만큼 저희는 어떤 재료와 조합해서 차별화를 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테스트해보니 밤이 레몬, 카시스, 커피, 초콜릿 모두 다 잘 어울리더라고요. 여러 요소들 중에서 그때 생각난 것이 발로나 블론드 초콜릿인 ‘둘세 초콜릿’이었고 실제로 매칭해보니 찰떡처럼 잘 어울렸어요. 이전까지는 주로 단골들 위주로 찾아오는 가게였다면 몽블랑으로 인해 저희 가게가 좀 더 알려졌던 것 같아서 더 애정이 갑니다. 


나에게 ‘디저트’란?

저에게 디저트란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거의 매일 디저트를 만들고 아침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디저트 생각을 하거든요. 가끔은 꿈에서도 디저트를 만들곤 해요(웃음). 또 앞으론 어떤 디저트를 새로 만들어볼까 고민도 매일 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디저트를 만들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시나요?) 만들면서 풀린다기보다는 마지막에 생각한 대로 디저트가 잘 나오면 그게 너무 뿌듯하고 좋아요.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부터 완성까지 하루 종일 디저트와 함께 하고 있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제 일상입니다. 

 

셰프님의 강점과 보완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디저트를 만들 때 저의 강점은 디저트 맛에 있어서 밸런스를 잘 잡는 부분인 것 같아요. 디저트를 드시는 분들이 저에게 맛이 조화롭다는 피드백을 해 주실 때가 많아요. 어느 하나 튀지 않으면서도 그 디저트의 가장 주된 맛을 잘 표현하는 것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아무래도 밸런스를 중요시하다 보니 저만의 튀는 개성이나 강렬한 맛을 내는 디저트는 거의 없는 편이에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호불호 없이 만드려다 보니 이렇게 메뉴가 꾸려졌는데 앞으로는 조금씩 도전적인 디저트들도 만들어서 선보이고 싶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디저트를 만들고 싶으세요?

사실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디저트는 안 만들고 싶을 것 같기도 한데(웃음). 저는 ‘제과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딸기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딸기 타르트나 딸기 프레지에 등등 다양 하게요. 딸기가 제과에 정말 많이 쓰이면서 꾸준히 사랑받는 재료거든요. 개인적으로도 딸기를 참 좋아해서 새콤달콤한 딸기 디저트를 만들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다른 영셰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건강을 꼭 잘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몸 건강, 마음 건강이 사실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잖아요. 저도 일 해보니 이쪽 업계 1년 주기가 정해져 있더라고요. 밸런타인데이, 추석, 크리스마스 등등 기념일 마다 그에 맞는 특별 디저트를 만들곤 하는데 여기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 자세는 너무 좋지만 본인 스스로도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다같이 건강하게 달콤한 디저트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데일리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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