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빵을 굽다: 장인匠人의 이야기. 신무기(新麦) 컬렉션 NPO 新麦 COLLECTION

백결 특파원

rufltk7@naver.com | 2026-01-15 18:00:04

일과 삶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일에 삶을 녹여낸 사람들이 많은듯 하다. 이들은 어떤 단어를 연상케 하곤 한다. 마치 빵에 삶을 바친 것만 같은 NPO법인 '신무기(新麦) 컬렉션'의 이사장인 이케다상은 내게 어떤 단어를 떠올리게 했을까.



전 세계 생물의 10% 이상이 서식하며 상당량의 이산화탄소 흡수 및 산소 배출로 '지구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 아마존. 그런 아마존이 사라지면 대규모 동식물이 멸종하고 생태계가 붕괴되어 지구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아마존은 많은 동식물들에게 삶의 터전인 것이다.

나는 이케다 히로아키상을 보며 아마존을 떠올린다. 물론 그가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춘다 한들 잠깐의 시간은 큰 티가 나지 않을 것이고, 일본 제빵업계가 무너지지도 않을 테다. 어쩌면 그가 지금껏 일구어 놓은 탄탄한 생태계 안에서 제빵사들은 변함없이 빵을 구워 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는 많은 제빵사들이 빵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고 제빵사, 빵, 그리고 소비자들 간의 건강한 삼각관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본산 밀로만 빵을 굽는 빵집들이 이토록 많아진 데에도 그의 역할이 컸다.

빵 관련 기자, PD, 그리고 행사 기획자 등 빵과 관련하여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자칭 '빵 오타쿠' 이케다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무기(新麦) 컬렉션의 이사장 이케다 히로아키(池田 浩明)상

Q. 사람이 깊은 사랑에 빠지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표가 난다. 이케다상은 빵과 사랑하고 있음을 난 확신하는데, 그 첫 만남이 궁금하다. 
운명적인 만남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30살 무렵, 프랑스에서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집 근처 빵집의 브리오슈와 하드 계열빵을 맛봤을 때 프랑스에서 보낸 시절이 떠올랐던 경험이 있다. 그 빵이 황홀할 정도로 맛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프루스트 효과였을지도 모른다. 빵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고, 빵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져 이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 *특정 냄새나 맛, 소리 같은 감각적 자극을 통해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이 갑자기 떠오르는 현상.





이케다상은 매년 유명 셰프들을 초청해 신무기를 이용한 제빵 세미나를 한다

Q. 이케다상은 빵과 관련된 기사를 쓰고, 행사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빵에 대한 욕구는 없었는지?
본래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출판사에서 일했었다. 주로 잡지에 실리는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이 담긴,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를 느꼈다. 그 시기에 빵에 대한 애정이 맞물렸고 그렇게 다양한 빵집을 돌아다니며 빵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예를 들어 당시에도 프라이스 카드에 흔히 '장시간 발효'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물론 제빵사들은 빵을 장시간 발효하는 것으로 인해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고 있지만 이 방식으로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장시간 발효하면 좋겠지'라는 단순한 이해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글이 필요했다. 눈 앞의 먹음직스러운 이 빵이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소비자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Q. 빵에 대한 애정이 깊기에 기사로 다루고 싶은 것이 많았을 것 같다. 첫 기사는 어떤 주제였는지?
첫 기사로 빵을 비교하는 글을 썼다. 밀가루의 산지·제법·배합별로 결과물을 비교해보는 것이었다. 나 또한 빵에 대한 지식이 얕았기 때문에 빵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나가며 글을 썼고, 여러 종류의 빵을 늘어놓고 같이 먹어보니 그 특징과 차이가 명확히 다가왔다. 그렇게 자연스레 활동의 폭이 넓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Q. 이케다상 덕분에 일본의 제빵업계가 정말 건강하게 성장했음을 몸소 느낀다. 지금의 활동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생산자, 제빵사, 그리고 소비자 간의 지속가능한 순환 사이클을 만드는 것 등 여러 목표가 있지만 처음부터 힘 쏟고 있는 것은 빵의 맛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언어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커피 혹은 와인 같이 말이다. 과거 프랑스에서 소믈리에와 와인 테이스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와인에 친숙하지 않았던 나조차도 체계적인 플레이버 노트를 기반으로 테이스팅을 하니 와인을 보다 깊이 음미할 수 있었고,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커피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은 플레이버 휠이라는 존재의 공도 크지 않나 싶다. 원두를 예로 들자면 에티오피아는 베리 계열의 향미를, 인도네시아는 비터한 깊은 맛의 향미를 띠듯 산지별로 특징이 있다. 빵에도 어느정도 체계를 갖춘 플레이버 노트가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빵을 더 깊이 음미하고, 빵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빵은 그러한 지식체계가 자리잡고 있지 않기에 그것을 만들어 빵의 보다 깊은 곳까지 소비자들을 안내하고 싶다.




일본의 지역별 밀 생산 현황표. 전국의 다양한 제분회사들과 협업해 각 시기별로 밀을 수확한다.

Q. 가장 널리 알려진 활동으로는 신무기 컬렉션일 것 같다. '신무기(新麦)', 새로운 밀이라는 뜻인가? '신무기'란 그 해에 갓 수확하고 제분한 밀을 뜻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니가타, 큐슈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밀을 경작하고 있다. 밀을 수확하는 시기가 되면 각 지역에 따라 농가를 방문해 수확 현장을 체험하고, 제분된 밀을 전국의 빵집들에 운송하여 신선한 밀가루로 그 시기만의 빵을 만든다. 그리고 매년 신무기를 사용하는 빵집들이 시부야, 요요기 등 도쿄 한복판으로 모여 이벤트를 개최해 소비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이벤트에는 농가에서도 방문을 한다. 결국 생산자, 제빵사, 그리고 소비자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Q.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밀 이벤트가 된 신무기의 시작이 궁금하다.
시작은 2014년이다. 당시만 해도 국산 밀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었다. 맛있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건강에 덜 유해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국산 밀로도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입지가 좁았다. 그러던 중, '365일'의 스기쿠보상을 필두로 국산 밀도 수입산 밀 못지않게 맛있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일본 내에서 밀 생산에 적합한 기후를 지닌 홋카이도 밀을 알리는 행사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카타네 베이커리', '치쿠테 베이커리' 등 드물게 국산 밀로 빵을 굽는 가게가 참가해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그 때 제빵사들의 행복한 표정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넌지시 알려주는 듯했다. 다만 그 행사는 홋카이도 지역 한정이었기에 보다 많은 지역 밀의 매력을 소개하고 싶어 그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했고 지금의 신무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빵사들에게 밀이라는 것은 대량으로 경작, 제분되어 포대로 포장된 흰가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제빵사들에게조차 밀과 밀가루에 대한 거리감이 상당했고, 생산자도 밀을 수확한 후 컨테이너에 밀을 안전히 옮기는 것까지만이 본인들의 임무라 생각했다. 자신의 밀이 어떤 모습의 빵으로 구워지는지 몰랐고, 보다 맛있고 건강한 밀을 만들겠다는 인식이 아직은 옅은 시기였다. 그러나 조금씩 제빵사들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밀이 자라나는 밭을 찾아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밀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제빵사도 밀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자연히 보다 맛있는 빵으로 만들어내려는 욕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신무기 페스티벌에는 일본의 라멘 전문점도 참가해 빵집과 협업했다. 닭 육수 베이스의 진득한 국물에 적당한 산미가 깃든 빵이 곁들여져 있다

Q. 한국과 일본 모두 빵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가 널리 자리하고 있는 나라는 아니다. 쌀과 면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의 나라에서는 어떤 식으로 빵을 추구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빵은 일본과 한국에서 주식이 아닌 디저트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밀 재배의 측면에서 주목하고 싶다. 일본과 한국 모두 고립되어 있는 나라다. 그렇기에 수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두 나라 모두 밀을 재배하기에 그리 좋은 기후는 아니다. 다행히도 일본의 경우 면에 사용되는 중력분은 예전부터 잘 재배되어 왔는데, 그러한 중력분을 잘 사용하여 빵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현재 일본의 밀에는 중력분의 DNA가 내재되어 있다. 일본의 밀은 오랜 시간 면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 때문에 우동을 만드는 데 있어 쫄깃한 식감이 선호됐고, 그 결과 대부분의 일본 밀은 쫄깃한 식감을 띤다. 지금의 일본의 빵은 그 쫄깃한 특징을 잘 살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됐다. 그 반대가 바게트다. 바게트는 프랑스 파리의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가장 맛있게,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얇고 긴 형태이다 보니 오븐에 많이 들어가 주식으로서 생산 효율성이 좋았고, 표면적이 넓으니 고소한 풍미가 특징인 프랑스 밀에 적합했다. 결국 빵은 해당 지역에 잘 적응한 형태로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빵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독일의 빵을 맛있게 재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일본과 한국 모두 서로의 문화와 환경적 요소에 잘 녹아든 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은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Q. 마지막으로 일본과 한국의 제빵사, 빵 애호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맛있는 빵은 생산자, 제빵사, 그리고 소비자의 건강한 삼각관계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좋은 밀을 재배하고, 그 밀로 맛있는 빵을 만들고, 그에 응당한 값을 지불해 빵을 구매하고, 그것이 빵이 보다 오래, 그리고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본에서 빵을 구우며 나 역시 나름의 신조도 생겼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다. 손쉽게 입으로 뱉어 낼 수 있는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제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부단히 쌓아 올린 시간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간 이케다상이 쌓아 올린 시간이 지금의 그를 완벽하게 설명하듯 말이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백결 특파원 ruflt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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