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빵을 굽다: 장인匠人의 이야기 - 끊임없이 배우는 셰프의 빵집 쿠루스(KURS)

백결 특파원

rufltk7@naver.com | 2026-03-26 18:30:43

일본 빵집들은 여름과 겨울 장기 휴가를 갖는다. 속된말로 “몸을 갈아서 빵을 만든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체력적으로 고된 일상을 보내는 곳이 대부분이기에 긴 휴가를 통해 지친 몸을 충전하곤 한다. 헌데, 그 휴가마저 이용해 해외연수를 떠나는 셰프가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교토로 향했다.


한 업에 몸 담은 시간이 길어질 수록 대개 직업인으로서의 가치관은 세공되어 간다. 정답 없는 세상에, 스스로만의 유일한 정답을 상정해 취향을 갈고 닦으며 나아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가치관에 반(反)하는 것들은 오답으로 치부하는 상황도 왕왕 보인다. 아직은 배워야 할 시기이기에 열린 마음으로 많은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나 또한 빵을 만들수록 나만의 취향이 확고해진다. 같은 맥락으로 한 업장을 운영하는 셰프 정도의 경력이 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마음가짐과 자연히 멀어지곤 한다. 지금껏 쌓아온 것들을 보다 날카로운 칼로 제련하듯 빵을 만들곤 한다.


그런 와중에 ‘쿠루스(Kurs)’의 나카가와 셰프는 장기 휴가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 해외로 떠난다. 여전히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나카가와 상의 말을 들으러 교토를 찾았다.


쿠루스의 오너 셰프 나카가와 마사미치(中川昌倫)상

Q. 20대 중반에 뜬금없이 빵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들었다. 어떤 경위였는지?
실은 분재를 다루는 원예를 업으로 삼으려 고등학교와 단기대학 모두 원예를 전공했고, 원예사로서도 5년 근무했었다. 슬슬 원예사로서 독립을 하려는 시기에 문득 이대로 다른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않은 채 원예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부모님이 빵집을 운영하셨기에 자연스레 빵을 배워보게 됐고, 설상가상 그 찰나의 단순한 의문 어린 호기심으로 지금껏 빵을 만들고 있다.

Q. 일본은 대게 가업을 잇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들었다. 나카가와상은 가업 대신 독립을 택했는데 일본 문화에서 이례적인 선택이겠다.
맞다. 일본은 가업을 잇는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풍조이다. 하지만 가업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설령 가업을 잇는다고 한들 다른 업장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고 가게를 이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었다. 빵집의 아들이라고 불쑥 다양한 일을 맡게 되는 것 자체가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장기적으로 나에게 마이너스일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은 스스로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에 스스로의 가게를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Q. 오사카의 유명 빵집 '르 슈크르 쾨르(LE SUCRE COEUR)'에서 일했다. 보통 셰프들은 몸담았던 곳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독립을 하고도 그와 비슷한 결의 빵을 만들곤 하는데 쿠루스는 꽤나 다른 느낌이다. 예전부터 나카가와상이 만들고자 하는 빵의 이미지가 명확히 있었는지?
르 슈크르 쾨르에서는 빵에 대한 기술과 지식, 그리고 빵을 대하는 기술자의 태도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쿠루스에서도 이와나가 오너 셰프와 그 시간에 대한 존경을 담아 2-3가지 정도의 르 슈크르 쾨르의 제품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와나가 셰프는 스태프들에게 신메뉴 개발 등 다양한 기회를 줬었다. 셰프의 조언과 내 이상이 담긴 빵을 만드는 과정이 잘 섞이면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빵의 방향성도 명확해졌다. 가게를 위해 일할수록 스스로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선명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초창기 쿠루스는 그동안 내가 몸 담았던 베이커리들의 집합소였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색깔을 잘 입혔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보다 빵에 스스로의 개성을 덧입혔고 결국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주게 됐다.

Q. 여름과 겨울 등 장기 휴가마다 해외로 연수를 나가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러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험이 나카가와상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표면적인 기술과 지식을 배우기 위함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호기심을 가졌던 가게를 직접 찾아가서 어떤 사람이, 어떤 스타일로, 어떤 생각이 담긴 빵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다. 특히나 유럽에서 빵은 일본의 쌀과도 같이 일상을 굳건히 지탱해주는 주식이다. 주식으로서의 빵이 세계의 각 지역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손님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해외에 나갈수록 절실히 느끼는 것은 빵을 업으로 삼길 잘 했다는 점이다. 빵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스태프들의 성장을 위한 것도 있다. 일본에는 비교적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문화가 있다. 요식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해외에 다녀와 배우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빵을 만들면 그것이 직원들의 성장과 동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배움에 대한 욕구를 이렇게나마 충족시켜주려 한다. 나 또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그러한 것들을 갈망했으니 말이다.

Q. 이번 뉴질랜드 연수는 어땠는지?
뉴질랜드의 빵의 문화는 그리 길지 않지만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나라인만큼 다양한 문화권의 빵이 즐비했었고 무엇보다 작은 빵집이라도 작게나마 실내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과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 일본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고객들에게 공간과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확실하게 빵을 더 맛있게 먹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몸소 느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 제품 품절이었다. 예약해놓길 잘했다

Q.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
손님과 커뮤니케이션 할 때다. 단골 손님이 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능한 인사라도 하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때로는 그들이 “이건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좋을 것 같아”라고 조심스레 말해주곤 한다.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어 기쁜 순간이다. 간혹 “쿠루스의 빵을 이렇게 먹고 있어”라 말해주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렇게 직접 먹어보고 신제품으로 상품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통이 빵을 만듦에 동기가 되기도, 기쁘기도 한 지점이다.

Q. 5년, 10년 뒤 쿠루스가 어떤 빵집이었으면 하는지?
들뜬 마음과 차분한 마음이 공존하는, 가벼히 놀러가는 느낌의 빵집이었음 한다. 제빵사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직접 밀의 재배부터 시작해 경작한 밀을 자가제분해 빵을 만들어 장작 오븐으로 굽고 싶다.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가치관인지 아집인지 모를 것들이 굳건해진다. 내가 나를 옭아매어 그 이상으로, 그 너머로 향하는 가능성의 소리를 묵살한다. 허나 훗날의 나는 나카가와상처럼 열린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은 채 빵을 굽고 있었으면 한다. 나를 위해, 나의 빵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백결 특파원 ruflt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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