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먹습니다. 빵은 인문학입니다. 우리에게 사람 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대한민국 제과 명장 제13호 이흥용

박혜아 기자

hyeah0112@gmail.com | 2024-12-30 12:15:57

이흥용 명장은 빵을 맛있게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건, 빵을 만드는 사람의 행복과 빵을 사는 사람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맛있는 빵이 나오고, 그렇게 만든 빵이 잘 소비되어야 제빵이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흥용 과자점’의 이흥용 오너 셰프는 13번째 대한민국 제과 명장이다. 1995년 이흥용 과자점을 오픈한 후 부산을 대표하는 로컬 베이커리로 이흥용 과자점을 키웠다. 현재는 베이커리 카페 ‘칠암사계’, ‘금정사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빵 전문점 ‘행복한 느림보’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흥용 명장은 어떤 빵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철학, 안정적인 베이커리 경영을 위한 목표 의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목적을 확실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남들과 다른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고 오랜 단골 고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컬 베이커리의 발전은 국내 제과업계의 발전을 견인한다고 생각한다.


주경야독, 교육자로서 바탕을 만들다

이흥용 명장이 제과 일과 인연을 맺은 건 1984년 겨울, 부산의 ‘뉴욕제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몰려드는 케이크 주문으로 그가 맡은 일은 하루 종일 달걀 깨기였다. 단순 반복 업무였지만 그는 밀려드는 고객들을 보며 이 시장의 잠재력을 봤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한 권의 책을 선물 받게 됐다. “미국소맥협회에서 발간한 제과 제빵 이론 서적이었습니다. 반죽이 발효하고 오븐에서 구워지는 과정은 과학 그 자체더라고요. 이 학문을 잘 탐구해야 진정한 기술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흥용 명장은 이듬해 경남전문대학(현 경남정보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낮에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시간을 잘 보낸 덕분에 지금의 이흥용 과자점이 있을 수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기술자로서 한 단계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밑천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 후 이흥용 명장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봐야겠다는 결심으로 서울행을 선택했다. 그에게 기회를 준 곳은 서울 아현동에 위치한 국제제과 직업훈련원이었다. 이흥용 명장의 학구열과 해박한 지식을 높게 산 덕분이었다. 4년여간 강사로 근무하며 윈도우 베이커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교육자로서의 역할 수행을 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이흥용 명장이 CJ 기술지원센터에서 센터장으로서 직원들을 교육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흥용 과자점의 탄생과 성장

이흥용 명장의 주경야독을 지켜보고 그가 서울로 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준 ‘고려당’의 사장은 그를 다시 부산으로 부른다. 고려당을 인수해 매장을 직접 운영해보라고 권한 것이다. 그렇게 1995년, 이흥용 과자점이 탄생했다. 이 명장은 3가지를 꼭 지키는 빵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따뜻한 빵, 속이 편한 빵, 그리고 매일 먹을 수 있는 빵이다. 빵은 주식이 아닌데다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이 3가지 사항에 부합해야 고객들에게 외면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제품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고객에 대한 연구 역시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사람들이 원하는 빵이 무엇인지, 어떤 포인트에서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지 살피고 사람들이 이흥용 과자점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앞서 서울 국제제과 직업훈련원에서 강사로 일했던 이력이 또 다른 연을 낳아, 이흥용 명장은 부산에 오픈하는 CJ 기술지원센터에서 교육자로 겸임하게 된다. 제과 제빵 기술에서 이론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탄탄히 다진 덕분에 이흥용 명장은 만족을 안겨주는 교육자로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이력을 바탕으로 2013년 ‘이흥용의 리얼 레시피’를 출간했다. 리얼 레시피는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이흥용 명장은 이흥용 과자점을 성장시키기로 마음먹고 경영에 있어 10년 계획을 세웠다. 단계적으로 매장 확장을 이룬 후 10년 뒤 매출 100억 달성을 목표로 세운 것이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첫 3년 동안 2호점 오픈을 위해 기초를 다졌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매뉴얼화였다. 이흥용 명장은 레시피 및 공정 정리, 운영 시스템 점검 및 고객 관리 등을 정리한 매뉴얼 북을 만들어 사직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그는 이어 이흥용 과자점이 입점할 로드맵을 만들었다. 로드맵을 따라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서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동래, 구서, 해운대 등에 순차적으로 지점을 확장했다. 그렇게 10년 후인 2016년, 이흥용 명장은 매출 100억 달성이라는 목표를 이룬다.

칠암돌만주 레시피. 이흥용 과자점의 모든 제품은 정확한 배합표와 상세한 공정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흥용 과자점을 부산을 대표하는 로컬 베이커리로 성장시킨 후 이흥용 명장은 대한민국 제과 명장에 도전했다. 그리고 2018년 13번째 제과 명장으로 선정된다. 이 명장은 명장 선정 과정에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긍정적인 평가에 중요한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빵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사람’에 주목했다. 기술자가 행복해야 빵을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빵을 소비하는 주체를 탐구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잘 만드는 빵 백날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손님이 원하는 빵을 잘 만들어야 해요. 고객의 니즈, 내 기술, 이 두 가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꾸준히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습니다.”

*이흥용(2017). 베이커리 종사자의 일과 삶의 균형이 직무 소진, 정서적 몰입, 직무 만
족 및 직무 몰입에 미치는 영향. 박사학위논문. 영산대학교


이흥용 명장은 발전을 위해 ‘목표’와 ‘목적’을 정확히 구분하고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경우, 이흥용 과자점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목표에는 3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이흥용 과자점이 직원들에게 평생 직장이 되어주기 위해서, 둘째 단골 고객에게 더 건강한 빵, 과자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셋째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제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그는 브랜드 성장을 위한 노력들이 결국 대한민국 제과업계의 발전이자 명장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베이커리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늘 안테나를 세웁니다. 대한민국 제과 명장의 베이커리라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 주목할 거예요. 때론 누군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면 멈춰 있거나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2021년 이 명장은 이흥용 과자점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베이커리 카페, 칠암사계를 부산 기장에 오픈했다. 전체 메뉴의 80%가 콘셉트에 맞게 새로 브랜딩 됐다. 신선도를 강조하기 위해 제철 및 산지 직송 재료들을 다양하게 사용했으며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메뉴 개발에 신
경썼다. 특히 ‘칠암돌만주’는 기장 앞바다의 7개 검은 바위를 형상화한 만주로 칠암사계의 시그니처다. 이흥용 명장이 만드는 베이커리 이야기는 계속된다. 유럽빵 전문점인 행복한 느림보는 올해 11월 부산 수영구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그 또한 일본, 프랑스 등 수많은 베이커리를 다니고 참고했다. 맛있다고 생각한 레시피는 정확히 당도, 염도,
산도를 기준으로 수정해 ‘이흥용화’ 했다. “검도 용어 중에 ‘수파리(守破离)’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본을 배워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인데요. 베이커리 경영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입니다. 다른 베이커리를 살피고 배울 게 있다면 배워야죠.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보고 먹고 공부하세요. 모방은 반드시 창조를 낳을 겁니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박혜아 기자 hyeah01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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