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 베이크 앤 스낵(Sirha Bake&Snack) 2026으로 파악하는 베이커리 업계의 변화

윤미지 특파원

mijithemail@gmail.com | 2026-01-23 15:32:35

유로빵에서 시라 베이크 앤 스낵으로, 제빵 박람회의 산업적 전환
빵을 넘어 스낵·커피·브랜드로 확장되는 프렌치 베이커리의 현재
지속가능성과 경험 소비, 새로운 F&B 질서를 묻다
ⓒAlex Gallosi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빵 박람회는 더 이상 ‘유로빵(Europain)’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수십 년간 유럽 제빵 산업을 대표해온 이 행사는 ‘시라 베이크 앤 스낵(Sirha Bake&Snack)’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발하며 ‘프렌치 베이커리’의 다음 스텝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로빵의 재탄생은 ‘프렌치 터치’라고도 불리는 전자음악이 작년에 프랑스 국가 무형 문화유산 일부로 지정된 일을 떠올리게 했다.  외골수처럼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미래산업 분야에서 앞서려는 프랑스의 또다른 얼굴이 제빵 박람회에도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Alex Gallosi

‘시라 푸드(Sirha Food)’ 안으로 편입되어 있던 유로빵(Europain)은, 올해를 기점으로 정체성이 명확히 전환됐다. 제빵 기술 중심 박람회였던 유로빵은 이제 소비·유통·외식·브랜드를 포괄하는 ‘베이커리 산업 박람회’로 관점을 옮겼고, 그 변화는 행사장 곳곳에서 체감됐다. ‘시라 베이크 앤 스낵(Sirha Bake&Snack)’이라는 이름 아래 새롭게 구성된 전시장은 제빵 장인이나 제빵 학교 학생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파티시에, 카페 창업자, 브랜드 기획자, 리테일 종사자까지 아우르는 산업형 박람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섹션, 스낵킹 존, 커피 존은 그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순수하게 ‘빵’을 보기 위해 찾은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프랑스 베이커리 업계를 둘러싼 최근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빵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보이는 베이커리 확장세
프랑스의 전통적인 식문화에서 빵은 오랫동안 명확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경계는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리의 비스트로에서는 에스프레소나 카페오레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거의 선택지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커피 전문점이 도심 곳곳에 자리 잡았고, 말차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또 제과, 제빵, 세이버리의 구분 역시 점차 의미를 잃어가는 중이다. 30유로짜리 잠봉 프로마주 트러플 샌드위치를 출시해 논란을 일으킨 파티시에 세드릭 그롤레의 행보는 이러한 변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빵’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나의 프리미엄 F&B 콘텐츠로 재정의되고 있는 셈이다. 
고급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핫 초콜릿과 곰 모양 마시멜로 초콜릿 팝업을 선보인 리츠 호텔, 패션위크 기간에 맞춰 커피숍을 연 생로랑의 사례는 식음료가 이제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는 핵심 매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Alex Gallosi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이번 박람회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산업의 확장뿐 아니라 그 이면에 대한 질문도 함께 제시했다는 점이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콜렉트(Collect)’ 섹션에서는 남은 빵을 재활용해 수제 맥주를 양조하는 ‘라 미(La Mie)’와 같은 업사이클링 사례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구호 단체인 ‘레 헤스토 뒤 꾀흐(Les Restos du Cœur)’를 조명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1985년부터 활동해 온 이 단체는 프랑스 전역에서 무료 식사와 식료품을 제공하며 수백만 끼니를 지원해 왔다. 업사이클링과 사회적 연대를 다룬 전시 구성은 산업의 확장과 함께 그 이면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함께 드러냈다. 음식물 쓰레기 감축과 재료의 재가치화,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연대는 이번 박람회의 중요한 축 중 하나였다.

환경 문제를 조명하는 단체 레 헤스토 뒤 꾀흐는 박람회 기간 동안 버려지는 빵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 시설과 박람회 부스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라 미의 업사이클링 맥주

스낵·커피·미래 포맷의 실험장
스낵킹 스테이지에서는 스트리트 푸드와 부티크 브랜드의 힘, MZ세대를 겨냥한 스낵 포맷, 여행 리테일 사례 등이 다뤄졌다. 실제로 프랑스 주요 기차역에는 기존 대형 체인 대신 크리스토프 아담 셰프의 ‘데포 레걀(Dépôt Légal)’과 같은 개성 있는 브랜드들이 속속 입점하며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커피&베이커리 존은 제빵사, 제과사, 바리스타가 한 공간에 모이는 상징적인 무대였다. 프랑스 내 커피 소비의 대중화 속에서 ‘어떻게 차별화된 경험을 설계할 것인가’가 핵심 질문으로 제시됐다. 생로랑의 커피숍처럼 음료와 음악, 공간 경험을 결합해 브랜드 가치를 확장하는 사례는 특히 인상 깊었다. 또한 라떼 아트 챔피언십은 기술 경쟁을 넘어 ‘보여지는 커피’, 이미지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으로 읽혔다.
말차, 곡물 기반 음료, 기능성 음료 등 대체 음료에 대한 관심 역시 두드러졌다. 오트밀크와 두유는 알레르기 대안이 아닌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았고, ‘디나(Dyna)’ 부스처럼 카페인을 대체하는 건강·기능성 음료를 제안하는 브랜드들도 눈에 띄었다. 과거 치커리 음료가 커피 대체품으로 자리했던 프랑스의 역사와 맞물려, 이러한 흐름은 유행의 반복처럼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업대 위를 넘어, 산업으로서의 빵
전시장 곳곳에서는 테이스팅과 장비 데모가 이어졌고, 이를 매개로 한 자연스러운 미팅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럼과 스테이지 프로그램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현재 빵 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질문들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일본식 식빵, 글루텐 프리, 100퍼센트 식물성 빵과 같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 연구뿐 아니라, 전통과 신기술 사이의 균형, 외부 투자로 가속화된 산업 구조의 변화, 장인정신과 자본의 관계 등 다소 무게감 있는 주제들도 함께 논의됐다. 이는 제빵 산업이 기술 발전과 자본 유입을 둘러싼 변화 속에서, 다양한 관점을 검토하려는 흐름이 전시장 안에서도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었다.
방문객 3만 5천여 명, 4천 명 이상의 제빵사·파티시에·셰프, 450여 개의 브랜드와 80여 개의 마스터클래스. 수치만 보아도 박람회의 위세는 여전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시라 베이크 앤 스낵은 더 이상 ‘빵을 만드는 기술’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로빵에서 시라 베이크 앤 스낵으로의 변화는 그저 리브랜딩이 아니라 제빵이 작업대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는 시대를 향한 선언처럼 느껴졌다. 소비 방식, 공간, 속도, 라이프 스타일까지 함께 다루는 박람회로서의 첫걸음. 아직은 유로빵의 외형이 
남아 있지만, 다음 에디션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윤미지 특파원 mijithema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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