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커피를 만날 수 있는 곳, 커피 리브레

박다솔 기자 / 2024-12-23 15:14:44
국내에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아는 이가 거의 없을 때부터 커피 농장을 비롯해 생두에 관심을 가진 브랜드가 있다. 우리가 다루는 커피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공산품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곳. 언제나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커피 리브레’다.

스스로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는 곳, ‘커피 리브레(Coffee Libre)’. 2009년 당시로서는 낯선 ‘스페셜티 커피’를 들여오며 ‘한국 스페셜티 커피 1세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 스페인어로 ‘자유로운’이라는 뜻의 리브레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기존 고정 관념이나 관습에서 벗어나 열려 있는 커피를 하고자 했다. 이러한 커피 리브레가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 잡는 데에는 독특한 로고도 한몫 했다. 파란 복면을 쓴 모습의 로고는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다. “영화 ‘나초 리브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낮에는 신부로 고아를 돌보고 밤에는 프로 레슬러로 대전료를 벌어 아이들을 돌봤던 실존 인물을 배경 으로 하는데 재미와 의미 모두 갖춘 멋진 일이라 생각했죠. 커피 리브 레가 영화 속 복면처럼 희망의 또다른 얼굴이 되고자 했습니다.”

커피에 입문하다
서양사학과를 전공할 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서필훈 대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떠올린 곳은 바로 안암동에 위치한 ‘보헤미안’이었다. “안암동 보헤미안은 강릉 보헤 미안의 박이추 선생의 수제자인 최영숙 점장이 운영하는 곳이에요. 원래 고객으로 자주 가던 곳인데 그곳에서 직접 커피를 배워보니 생각보다 훨씬 행복했죠.” 자연스레 커피에 빠져든 서 대표는 영어 원서까지 찾아보며 커피 공부에 열정을 쏟았다. 그때가 마침 미국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붐이 일던 시기로 지속가능성, 산지와의 직거래 등 가치 지향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그 과정에서 서 대표는 커피에 대한 기술보다도 커피를 바라보는 방식과 철학에 대해 깊이 있게 배워 나갔다. 이후 ‘한국인 최초 큐 그레이더(커피 품질 감별사)’, 2012년&2013년 ‘월드 로스터스 컵’ 우승, ‘컵 오브 엑설런스’의 국제 심판관 등 여러 국제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실력을 뽐냈다.

커피 농장에 전하는 희망
커피 리브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다이렉트 트레이드’일 것이다. 서필훈 대표는 좋은 커피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내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일례로 2016년 온두라스에 방문해 발견하게 된 ‘챠기테’라는 마을은 서 대표를 만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커피 재배와 가공을 비롯한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펄퍼(커피 생두의 껍질 까는 기계)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펄퍼가 없어 커피 열매를 헐값에 판매할 만큼 가난한 곳이었어요.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효 탱크와 건조용 비닐하우스도 만들었죠. 또 2022년에는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 판매 수익으로 커피 창고 축조를 돕기도 했습니다.” 커피를 매개로 만나는 사람들의 미각적 행복과 기술적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커피 리브레. 커피를 만드는 최초의 인간인 농부 들에게 실질적 고마움과 구체적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서 대표다.

커피에 대한 모든 정보
커피 리브레는 커피를 판매하는 일 외에도 커피 관련 자료를 다룬다. 일주일에 1~2개씩 홈페이지 ‘아카이브’ 섹션에 올라오는 게시물은 원두에 대한 정보는 물론 커피나무, 카페 인테리어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업로드된 964개의 자료들은 누구나 무료로 열람이 가능하다. “주된 활동은 커피 관련 논문 소개와 전문 서적 번역및 출판, WCR(World Coffee Research) 자료 번역 및 출판 등이 있어요. 이런 무형의 가치가 결국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출판한 책은 스페셜티 커피, 에티오피아의 야생 커피 역사, 커피와 와인두 분야 비교까지 다양하다. 매장에서 직접 열람도 가능하니 확인 후 구매할 수 있다.

오롯이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해오는 커피 리브레지만 생각 외로 인테리어는 단순하다. 특별한 매장 콘셉트나 인테리어를 고수하기보다는그 지역과 잘 어울리는 지와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더 고민했다.
최근 자리를 옮긴 연남점은 50년 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집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더욱 편안한 분위기로 완성했다. 여기에 특별한 하나의 아이템이 있는데 바로 한약방 서랍이다. 공간의 포인트가 되는 요소로 커피가 일종의 약이라 생각한 서 대표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경동시장의 한약방 거리에서 중고로 사 왔어요. 한약방 서랍마다 쓰여 있는 약재 이름의 다양함이 스페셜티 커피를 연상시키더 라고요.” 또한 커피 리브레의 원두 구독 서비스 ‘장복’은 장기 복용이라는 뜻으로, 커피가 약이라는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이름이기도 하다.

대표 블렌드인 ‘배드 블러드’로 추출한 ‘필터커피’.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 ‘나쁜 피’와 랭보의 시 ‘나쁜 피’에서 영감을 받았다. 과일의 산미와 복합적인 풍미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에스프레소에 얇게 간 초콜릿과 코코아 파우더가 올라간 커피 메뉴 ‘마로끼노’.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사이로 달콤하고 진한 초콜릿이 조화롭게 녹아든다.


커피 리브레가 쌓아가는 발자취
커피 리브레는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그중 ‘고그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친환경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7월부터는 ‘TWP(Tree, Water&People)’라는 NGO 단체와 함께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자연과 한걸음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요. 생분해성 PLA 아이스 컵, 사탕수수로 만든 스티커, 종이 봉투를 사용하는 등 하나씩 해 나가는 중입니다.” 또한 매장 내 점자 메뉴판을 비치하고 장애인 화장실, 아기 기저귀 가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행보를 보여준다. 지금 있는 곳에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집중한다는 커피 리브레는 앞으로도 다양한 원두로 매주 새롭게 다가갈 예정이다.

바닐라 빈 라떼
달콤한 바닐라 빈 시럽이 들어가 부드러운 라떼와 잘 어우러진다. 주문 시 원하는 원두를 선택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골드문트 원두 패키지
커피 리브레에서 선정한 고급 원두 라인인 골드문트의 ‘온두라스 베스트 파라이네마 4위’. 엘 파라이소와 트레스 피에드라스 지역 1,300m 고도에서 재배되었다. 블랙커런트, 포도, 블루베리, 라운드바디의 뉘앙스를 느낄수 있다.
더치커피
케냐 40%, 니카라과 40%, 에티오피아 20% 비율로 원두를 블렌딩해서 추출한 더치커피 ‘모비딕’. 묵직한 달콤함과 신선하고 부드러운 향이 코끝에 진하게 남는다. 고소 하고 깔끔한 맛으로 우유에 희석해 먹어도 아주 잘 어울린다.
싱글 오리진 드립백 커피
리브레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담은 드립백 세트. 신선한 커피 맛을 위해 소량만 생산, 판매하며 드립백 안에는 원두의 신선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산소 흡착 패치인 ‘플라빈’이 들어있다.
서필훈 대표


원두 로스팅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덜 익거나 타지 않는 것이 일단 기본입니다. 그다음은 생두가 가진 매력을 잘표현하는 것이죠. 약배전부터 강배전까지 선입견 없이 도전하려 해요. 예를 들어 파나마 게이샤는 특유의 화사함을 드러내기 위해 약배전 하는 곳이 많죠. 그러나 커피 리브레에서는 색다른 맛과 향을 전달하고자 강배전으로 소개할 때도 있습니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늘 그렇듯 단맛과 밸런스, *클린컵이 좋은 커피를 만들고자 합니다.
*클린컵: 커피를 마실 때 잡미나 부정적인 맛없이 맑고 투명한 느낌.


‘핀카 리브레’라는 직영 농장은 어떻게 운영하게 되셨나요?
핀카 리브레는 ‘자유로운 농장’이라는 뜻을 가진 커피 리브레의 직영 농장입니 다. 니카라과 누에바 세고비아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지천으로 핀 칼라꽃이 예뻐서 샀어요(웃음). 사실 농장을 운영하는 것보다 커피를 사서 쓰는 것이 훨씬 편하지만, 다른 농장들을 다니며 알게 된 커피 품종과 재배 및 가공 방식들을 직접 실험해 볼 수 있어 만족하고 있죠. 현재 농학자 한 명과 매니저 한 명이 운영을 돕고 있는데요. 올해로 어느덧 8년 차를 맞이하며 니카라과 CoE 8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커피를 다루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통해 거래하는 커피 생산자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을볼 때가 종종 있어요. 키우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펄퍼를 들이는 등 생산 환경이 좋아지는 것까지 다양한 면면들을 보곤 합니다. 한 생산자와 오래 꾸준히 거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꼭 커피 리브레 덕분에 환경이 좋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천천히 생산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다 보면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커피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브랜드로서 기억되고 싶네요.


커피 리브레 연남점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32길 20-5
인스타그램     @coffeelibrekorea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박다솔 기자 bbbogiii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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