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이슈로 고물가가 장기화되며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민감해지자,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크기나 수량을 낮추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가격을 올리는 효과를 보는 것이다. 제
조사들은 소비자들에게 용량 변경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처럼 몰래 용량을 줄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과 가공식품 209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월까지 최근 1년 새 19개 상품이 용량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에프앤비의 ‘양반 들기름김’, 해태 ‘고향만두’, 오비맥주의 ‘카스 캔맥주(8캔 묶음)’ 등에서 용량이 최대 20% 줄었다. 또 풀무원의 핫도그 4종은 한 봉지에 5개에서 4개로 개수가 줄었고, CJ제일제당의 ‘숯불향 바베큐바’는 280g에서 230g으로 중량을 줄였다. 마치 스텔스처럼 조용히 가격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의 행태에 대해 소비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용량이나 함량 등에 변화가 있을 때 소비자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고지에 대한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유 있는 ‘꼼수 인상’?
우리나라 정부는 1960년대부터 시장과 물가를 직접적으로 통제해왔다. 2000년 이후 직접적인 통제가 사라지는 분위기였지만, 2009년에 인플레이션이 4% 이상, 코로나19 이후에는 물가가 6% 이상 오르며 다시 직접적인 개입을 고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물건 가격을 인상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원유와 밀가루 같은 원자재 가격이 연중 3~4%대 오르는 가운데 슈링크플레이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물류비 등 원자재 및 생산 비용이 급등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며 “원가 부담이 커 부득이한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자 선택한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격조사전담팀 신설
한국소비자원은 올해 ‘가격조사전담팀’을 신설한다. 가격조사전담팀은 제품 가격 및 중량 변동 정보 조사, 관리 역할을 맡는다. 전담팀 신설과 함께 포털 참가격의 모니터링 대상도 128개 품목(336개 상품)에서 158개 품목(500여 개 상품)으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소비자단체를 통해서도 참가격에서 조사한 품목 이외 품목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여기에 더해 소비자원은 지난해 11월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를 마련하고 용량이 준 것으로 의심되는 제품 관련 제보 접수를 받고 있다. 신고 방법은 한국소비자원 대표 홈페이지(kca.go.kr), 참가격 홈페이지(price.go.kr) 내 ‘슈링크플레이션 신고하기’ 팝업을 클릭하면 된다. 만약 피해 등에 관한 상담을 원하는 경우 소비자상담센터(국번 없이 1372)를 이용할 수 있다.
제3의 플레이션
앞서 언급한 정부의 통제로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정 부분 억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물가안정 동참 요구가 향후 가격 폭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에서 나아가 용량을 유지하고 품질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Skimflation)’, 묶음 판매가 낱개보다 비싼 ‘번들플레이션(Bundleflation)’, 공짜로 제공하던 서비스에도 돈을 받는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 등 다른 부작용들이 더 성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이 사실상 기업에게 용량을 줄이지 말라고 엄포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가격 책정은 오롯이 기업의 몫이다. 제품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들 경우 더 큰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갑작스레 모든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의 광범위한 슈링크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정부의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이 효과를 잃을 수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선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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