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부순 얼음에 달콤한 시럽과 기호에 맞는 토핑을 올려 즐기는 ‘빙수’. 팥빙수에만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다채로운 얼음의 형태와 맛의 빙수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국민간식으로 자리잡았다. 많은 사랑을 받는 빙수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현재까지 걸어온 빙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한국의 팥빙수가 되기까지
빙수가 우리나라에 첫 걸음을 디딘 건 조선시대였다.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빙고(氷庫)에 저장한 후 무더운 여름에 꺼내서 갈아 먹었다. 이 때 당시만 해도 왕실과 상류층만이 얼음을 향유할 수 있었다. 양반층만이 즐기던 얼음을 서빙고의 관원들에게도 나눠주었는데, 얼음을 잘게 부숴 과일과 곁들여 먹었다고 한다. 그 형태가 쭉 이어져 지금의 화채가 탄생하였다. 본격적으로 빙수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건 1913년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일본식 빙수인 ‘가키고오리’가 들어오고 경성에 제빙 회사가 생겨나며 대중 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기록에 따르면 1921년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빙수집 187곳, 조선인이 운영하는 빙수집 230곳으로 경성에만 총 417곳의 빙수집이 존재했다. 특히 소파 방정환 선생은 <빙수>라는 책을 쓰고, 책에 빙수를 맛있게 먹는 법과 경성 유명 빙수 맛집의 위치를 기재할 정도로 빙수 마니아였다고 한다. 현대식 빙수가 수면 위로 올라온 건 1950년 6.25 전쟁 이후였다. 미군을 통해 들어온 연우와 초콜릿 시럽을 넣어 빙수를 풍부하게 즐긴 것이다. 1980년대에는 얼음 위에 단팥, 떡, 젤리를 얹은 한국식 팥빙수가 탄생했고 2000년대 들어 여러 종류의 빙수가 출시되며 빙수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빙고(氷庫) : 조선시대 왕실 또는 관료들이 사용할 얼음의 관리를 맡던 관청



브랜드화 된 빙수
외식업의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1990년대 이후, 가정에서 만들어 먹거나 제과점에서 팔던 빙수가 브랜드화 되기 시작했다. 1979년 ‘롯데리아’를 필두로 ‘이성당’, ‘밀탑’ 등 여러 업체들이 빙수를 출시했다. 1세대의 빙수 메뉴는 크게 팥빙수와 과일빙수로 나뉘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의 관심이 커피 같은 음료 시장으로 돌아서며 빙수의 인기는 한동안 수그러들었다. 그러던 중 2008년 ‘제주신라호텔’이 애플망고 빙수를 선보였고 2013년에는 사계절 빙수 전문 카페 ‘설빙’이 등장하며 다시금 빙수 열풍에 불을 질렀다. 그 후 ‘스타벅스’, ‘카페베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엔젤리너스’ 등 기존의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빙수 시장에 가세하며 2세대 빙수가 입지를 다졌다. 2세대 빙수는 1세대 빙수와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우유 얼음’을 쓴다는 점이다. 최근에 들어선 우유와 더불어 호지차, 말차, 커피 등 다양한 재료를 베이스의 얼음으로 만든 빙수도 흔히 볼 수 있다. 얼음의 맛뿐만 아니라 얼음을 갈아내는 방식에서도 경쟁력을 둔다. ‘티라벤토’의 실타래 빙수가 대표적인 예시다. 또한 팥빙수와 과일 빙수로만 나뉘었던 1세대와는 달리 메뉴가 훨씬 세분화됐다. 망고, 딸기, 멜론 같은 과일과 치즈케이크, 브라우니, 마카롱 같은 디저트, 그 외에 쑥, 고구마 등 계절감을 나타내는 재료를 빙수 위에 얹으며 고명의 범위가 점차 확장됐다. 지금은 ‘빙수는 그해 푸드와 디저트의 첨단 트렌드가 100% 반영되는 축약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빙수로 보는 MZ 소비 양상
최근에는 빙수를 먹는 행위가 ‘스몰 럭셔리’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올해 최초로 10만 원이 넘는 빙수도 등장한 바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격은 상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수요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10만 원대 가격으로 특급 호텔의 럭셔리한 분위기를 체험하는 ‘경험 소비’ 차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간편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던 빙수가 이제 하나의 여가 문화로 잡히며 3천 원부터 10만 원대까지 가격대가 폭넓게 분포되었다. 여름철 대표간식 빙수, 현재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 및 모든 취향을 아우르는 메뉴로 다분화되었다



무더운 날씨에 몸과 마음이 지쳐 녹아내릴 것 같다면 빙수 도장 깨기에 도전해보자. 각기 다른 빙수를 하나씩 먹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지나갈 것이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황지온 기자 hwangjion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