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요정 김혜준의 미식다반사]메종 조이초이

조한슬 기자 / 2024-11-28 11:11:20
사진 제공 : 김혜준

지난 9월 국내 다이닝신의 20년사를 다루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니, 다이닝 레스토랑의 서울 집중 현상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작년부터 틈만 나면 서울을 벗어난 지역의 다이닝 레스토 랑을 찾아 요리를 즐기고 기록하는 취미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순천에서 만난 ‘오트르망’에 이어 올해 가을에는 광주에 위치한 최혜영 셰프의 ‘메종 조이초이 비스트로’가 기억에 크게 남는다. 구례에 위치한 ‘보타닉 남도’라는 농장에서 처음 인사를 했던 최혜영 셰프가 운영 중이며, 프렌치 퀴진을 이어가는 국내 셰프들에게서 여러 번 추천받아 기대감이 가득했던, 메종 조이초이 방문기를 소개한다.

메종 조이초이
서울과 부산, 제주를 제외한 도시에 걸출한 경력을 가진 셰프들이 업장을 내는 경우가 소소하게 있어 왔지만,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15년을 지내고, ‘시그니엘 서울 STAY’에서 근무했던 최혜영 셰프가 고향인 광주로 돌아와 비스트로를 오픈하다니 큰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최 셰프가 새롭게 터전을 잡는 광주 지역에는 ‘알랭(Alain)’이나 ‘라롱드꺄레(La Ronde Carrée)’처럼 꾸준히 자신들이 쌓아 온 프렌치 퀴진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지역에서 성장하고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업장들은 점진적으로 타지역에서도 일부러 광주를 찾아올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것이 아마도 미쉐린 가이드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지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여행의 목적이 식도락에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놓치지 않을 포인트이기 때문. 

광주에 위치한 업장들은 구례 오일장이나 농장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성과 계절성에 어울리는 식재료를 사용해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면이 있다. 또한 서울 다이닝 시장의 보이지 않는 유행에 편승할 필요가 없기에 기술인으로서는 조금은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요리, 내가 지향하고 싶은 방향성을 펼쳐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을 것이다.

2024년 1월 문을 연 메종 조이초이는 그동안 최혜영 셰프가 해 온 파인 다이닝에서 조금 힘을 뺀 비스트로를 표방한다. 오픈 초기 코스로 진행을 한 적도 있었는데, 현재는 단품을 자유로이 주문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나는 점심시간에 맞춰 메종 조이 초이를 방문했는데, 어렵지 않고 익숙한 프렌치 요리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소라 아뮤즈 부쉬 (사진 제공 : 김혜준)
어니언 수프 (사진 제공: 김혜준)

파래 페스토를 더한 소라 요리가 첫 아뮤즈 부쉬로 등장했다. 소라 껍데기 속에 소라의 속살을 얹은 스푼이 올라가 있어 먹기 좋았던 것은 물론, 이색적인 비주얼에 다음 요리에 대한 설렘이 증폭되었다. 이후 등장한 어니언 수프는 가을의 차가워진 공기에 너무나 잘 어울려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다. 오래 볶아 낸 양파의 달큰한 맛에 진한 육수, 그뤼에르 치즈 풍미가 가득한 수프는 집에서 만들면 나올 수 없는 깊은 맛이라, 꼭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샐러드 리오네즈 (사진 제공 : 김혜준)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 니스에서 시작된 샐러드 리오네즈의 풍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바닷가의 지역성을 더해 짭조름한 엔초비와 참치, 올리브 등이 더해졌으며, 삶은 달걀이 함께 올라 가는 아주 든든한 샐러드였다. 뒤이어 가을에 제맛인 단감 샐러드와 진한 밤 벨루떼(수프)가 등장했다. 입안에 퍼지는 크리미하며 농후한 이 맛을 언어로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파테 엉 크루트 (사진 제공: 김혜준)

내게 감탄의 단말마를 내지르게 한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고풍스러운 트레이 위에 올려진 파테 엉 크루트(Pâté en croute)였다. 잘게 다진 육류를 다양한 향신료로 맛을 내어 파이 크러스트 반죽에 감싸 익힌 요리인데, 이토록 클래식한 스타일의 파테 엉 크루트를 광주에서 만나게 되다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파테 엉 크루트에는 비단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오리 가슴살, 닭가슴살, 돼지고기 안심과 등심, 후지, 삼겹이 함께 구성되어 복합적인 텍스처를 자랑했다. 이는 조리와 숙성에만 며칠씩 시간을 들였던 정성에서 비롯된 감동스러운 맛이리라. 

파테 엉 크루트의 정석 레시피에서는 육류를 감싸는 파이 크러스 트지에 버터가 아닌 라드(돼지기름)를 넣고 반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메종 조이초이에서는 맛의 목적보다는 파테의 형태, 틀을 유지해야 하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버터를 사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완성된 파테에는 작은 공기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는데, 내부의 증기가 밖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구울 때의 모습을 보면 구멍을 유지해 굽기 위해, 호일을 길쭉하게 말아 꽂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파테 엉 크루트는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인 만큼, 한 점 한 점 아껴서 입에 넣게 되었다. 실로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리는 기품 있는 맛이다. 


한우 부르기뇽 라비올리 (사진 제공 : 김혜준)

프렌치도 그렇지만 보통 양식 메뉴들의 간과 풍미는 와인과 페어링 할 때 더욱 배가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이어 나온 한우 부르기뇽 라비올리 또한 진정한 와인 친구로 손꼽힐 정도였다. 한우 사태로 부르기뇽을 만들어 그것을 라비올리 속으로 채워 낸 아름다운 이 요리는 레몬 제스트와 그뤼에르 치즈가 더해져 센스 넘치는 조화로움을 만들어냈다. 특히 흥건하게 적셔진 비프 주(Beef jus) 소스가 압도적인 맛이었다. 나와 함께 매장을 방문한 일행이 시킨 메인 메뉴인, 양고기 스테이크 또한 비주얼만큼이나 향신료 향미가 뛰어나 만족스러웠다. 


바바 오 럼 (사진 제공 : 김혜준)

이렇게 풍성한 요리들을 즐기고 나니 달콤한 디저트 타임이 돌아 왔다. 화려한 비주얼의 디저트는 아니지만, 클래식 프렌치 디저트 다운 면모와 맛을 담은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크림 위에 크리스피한 설탕 막을 올려 포크로 툭 깨서 함께 먹는 매력이 있는 크렘 브륄레와 촉촉하게 럼을 머금은 바바 오 럼을 맛볼 수 있었다. 가장 고전적이만 쉽게 맛볼 수 없는 디저트였던 지라, 더욱 반가웠다.

메종 조이초이의 요리들은 최혜영 셰프와 스태프를 포함한 두 명 의 소수 인원이 만들었음에도, 메뉴의 완성도가 너무나 높아 그저 감동스러울 뿐이었다. 이번 식사에서는 코스로 주문한 것은 아니지만, 풍성하게 주문한 메뉴들이 자체적인 기승전결이 있어 마치 흐름 좋은 코스를 즐긴 듯한 기분이었다. 광주 여행에서 메종 조이초이를 강력하게 추천해야 할 이유를 깨달아, 무척이나 뿌듯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여행이란 미식을 동반한 총체적 문화에 대한 체험이 채워져야 완전해지는 액티비티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스팟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서울을 벗어난 지역의 특별한 다이닝 레스토랑을 차근차근 탐구하며 즐 겨보는 여정을 즐겨보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미식 여행을 기약해 보았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조한슬 기자 stert12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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