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그늘도 마다하지 않는 것”-대한민국 제과명장 4호 김종익 명장

베이커리뉴스 / 2024-09-24 16:42:21
모두의 삶을 무너뜨린 참혹했던 전쟁. 하지만 힘차게 바닥을 딛고 일어나 찬란한 빛을 뿜은 한 청년이 있었다. 대한민국 제과명장 4호 김종익 명장, 그의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을 되짚어본다.

제과 제빵, 희망이 되다

8.15 광복 후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한 김종익 명장. “당시 아버지께서 생계를 위해 ‘곰베빵(낙타의 혹 같은 타원형 모양의 빵)’을 만들어 납품을 하셨는데요. 방과 후 화덕에 불을 피우는 등 작은 심부름을 하곤 했습니다.”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일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김종익 명장은 중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도의용군으로 참전,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전쟁터를 누볐다. 참혹했던 전쟁 속,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건 또 다른 시련이었다. “전쟁으로 사회 전체가 무너졌어요. 모두가 배고팠고, 힘들었습니다. 저 역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김종익 명장은 어려운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던 제과 제빵을 떠올리며 제과점에 취업한 것이다.

 

배움을 향한 열정 하나로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열심히 개발한 신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그의 마음에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작은 불꽃은 어느새 커져 ‘제과 제빵 기술의 선두주자’라는 야망이 되었다.

일본빵과학기술연구회 유학 당시 김종익 명장의 모습.

김종익 명장은 우리나라 제과 제빵 업계의 선구자인 故 김한식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그의 기술을 차근차근 익혀 나갔다. 이어 1971년, 배움의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일본 유학이라는 큰 도전에 나섰다. “당시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던 일본의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학 비자를 어렵게 받아 일본동경제과학교와 일본빵과학기술연구회를 졸업했죠. 일본 유학을 마친 후엔 프랑스, 이탈리아로 떠나 선진국의 제과 제빵 기술을 배웠습니다.”

유학을 통해 수많은 제과 제빵 기술을 접한 김종익 명장. 그중에서도 그는 ‘화과자’에 매료되었다. 친환경적인 재료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비주얼, 그 안에 담기는 예술성 등이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평소 미술을 좋아해 화과자를 만드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저의 개성이 담긴 화과자를 하나하나 만들면서 화과자의 역사를 이어나가야겠다는 사명감 또한 생겼습니다.”

 

모두를 모으다

제과 제빵 업계가 각광받던 1950~60년대. 27살의 김종익 명장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제과 제빵 기술자들을 한데 모았다. ‘대한제과기술 연구연합회’를 설립한 것이다. “제과 제빵 기술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기술자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故 공윤택 선생을 회장으로, 전 부회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대한제과기술 연구연합회는 1962년 ‘제1회 빵과자 품평회’를 개최해 서로의 기술을 나누고 더욱 향상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66년, 김종익 명장은 대한제과기술 연합회를 ‘(사)한국제과기술자협회’로 개편해 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협회는 1980년 ‘대한 빵과자업 협회’와 통합해 지금의 ‘(사)대한제과협회’가 되었다.

1960년 대한제과기술 연구연합회 창립대회.

 

어두운 그늘도 마다하지 않고

‘밀크 쉐이크’, ‘스펀지 드롭(현재 대기업에서 출시하는 초코파이의 시작)’ 등 트렌드를 만드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 제과 제빵 업계를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 이 모두를 인정받아 김종익 명장은 2003년 대한민국 제과명장에 올랐다. 뿐만 아니다. 명장에 오른 그는 2009년 모든 분야의 명장들이 모인 ‘대한민국 명장회’ 제9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2년의 임기 동안 각 분야의 기술 전수 사업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꿈나무들을 위한 경진대회를 개최했는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6.25 전쟁 참전 유공자이기도 한 그는 2014년부터 ‘김종익 명장의 찾아가는 사랑 나눔 베이커리’라는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다. “강남구 소재의 양로원과 고아원, 초중고교에 찾아가 빵과 음료를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나누는 활동입니다. ’대한민국 6.25 유공자회 강남구지회’ 회장으로서 6.25 전쟁을 바로 알리며 이웃을 돕는 사업을 매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종익 명장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조차 마다하지 않고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진정 명장의 역할이라 단언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오랜 시간 제과 제빵 업계에 헌신한 김종익 명장. 그를 버티게 할 수 있었던 건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다짐이었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지 노력해 최선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죠. 긴 시간, 제과 제빵은 하늘이 내게 맡긴 천직이라는 사명감과 장인 정신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동료와 이웃을 위해 일했습니다. 여러분도 어떤 일이든 온 마음을 다하길 바랍니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베이커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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