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화력발전소(구-당인리화력발전소) 옆, 폐업한 신발 공장은 2010년 3월 카페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합정에서 시작한 ‘앤트러사이트 커피 (Anthracite Coffee)’는 방현주 대표가 창업 멤버로, 어느덧 16년 차가 되었다. 앤트러사이트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이 많을 텐데, 이는 석탄의 한 종류인 무연탄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단어입니다. 합정점 인근에 있는 서울화력발전소는 우리나라 1호 발전소인데 무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어요. 거기에서 착안해서 누군가의 삶에 저희 커피가 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차가운 건물에 분 따스한 숨결
몇 년간 방치되어 다 무너져 내린 천장에선 비가 새고, 음침한 분위기에 주민들마저 등 돌렸던 공장을 리모델링한 앤트러사이트 커피. 내부를 전부 바꾸지 않고 공장이었던 흔적을 곳곳에 담았다. 공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 했다는 방현주 대표의 노력이 드러 나는 부분이다. “영국에서도 오래된 수력발전소를 음식점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사례를 본 적이 있어요. 본래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알 수 있도록 공장에서 사용했던 컨베이어 벨트도 커피를 내리는 카운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벽을 갈아내고, 천장을 다시 세웠던 탓에 공사 기간이 6개월 이상 걸렸지만 덕분에 매장에 손님들은 어색함 없이 자연스레 공간을 받아들인다. 앤트러사이트 커피는 오래되었기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 어쩌면 더 가치 있는 공간에서 커피를 내린다.


개성 있는 커피
앤트러사이트 커피는 블렌드 이름이 독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버터팻 트리오, ‘나쓰메 소세키’, ‘파블로 네루다’ 등 유명 밴드, 시인 또는 철학자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뉴욕에서 음악과 철학을 공부하고 온 방현주 대표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커피에 담는다. “모두 특징이 달라요. 떠올리면 연상되는 느낌을 담아 블렌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버터 팻 트리오라는 블렌드로 예를 들자면 밴드 이름입니다. 다양한 악기를 하나의 소리로 조화롭게 표현하는 밴드인데요, 여기서 착안해 5개 나라인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원두로 묵직한 질감과 다채로운 향미를 살렸죠.” 이처럼 각 블렌드마다 뚜렷한 개성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 커피를 마시며 그 블렌드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 읽어보는 것도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묘미다. 각지점의 바리스타들이 그 지점의 시그니처 블렌드를 만들기도 하니 놓치지 말자.


로스터기에 담긴 이야기
로스터리 카페에서 로스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앤트러사이트 커피는 여느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도 90kg’와 ‘프로밧 5kg’를 사용하고 있다. 연희점에 있는 고도 로스터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오랜 세월을 견딘 모델이지만 작동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일반적인 드럼 로스터기처럼 앞쪽으로 원두를 밀어낼 필요가 없어서 균일한 로스팅이 된다고. “고도 로스터기에는 벌써 2번 정도 불을 냈어요. 하지만 끄떡없더라고요(웃음). 기계라는 것이 사람들이 관리만 잘 해주면 후대의 사람들도 이 기계로 커피를 만들 수 있겠 다는 생각에 더 애정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프로밧도 120년 정도 된 모델을 사용하는 만큼, 쓸수록 더 애착이 가고 단순히 물건 그이상의 애정을 갖게 됐다는 방 대표. 로스터기에 담긴 세월만큼 더 깊이 있는 향의 커피가 매일같이 볶아지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와 커머셜 커피
‘스페셜티 커피를 다룹니다’, 많은 카페에서 이 같은 문구를 내세우며 매장을 홍보하곤 한다. 그러나 앤트러사이트 커피는 “커머셜 커피에도 스페셜티 커피 못지않은 생두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요리사의 역량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숨겨져 있는 커피콩을 찾아내서 그에 맞는 조리 법으로 조리하면 스페셜티 커피보다 뛰어난 맛을 내기도 합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대우받지 못하는 커피콩을 계속해서 발굴해 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선 커피콩을 발굴해 내는 컬렉터로서의 면모가 중요할 터. 방현주 대표는 그래서 더 건강하게 살게 된다고 한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삶, 커피가 이끌어주는 긍정적인 힘이다.


문화적인 소통
방현주 대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맛을 발굴하고, 이를 사람들 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커피를 한 단어로 정리해 보자면 ‘문화적인 소통’ 같아요. 이 소통을 위해 새로운 원두를 계속해서 찾아내는 거죠.” 문화적 소통을 위해 각 지점의 분위기에 따라 음악도 다르게 틀고 있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모던 재즈 혹은 록에 가까운 재즈까지 15년 전 당시 카페로선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새로운 음악, 커피,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카페, 앤트러사이트. 방 대표는 카페란 늘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곳이기에 커피의 맛, 그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익숙하고 일상적인 맛이 아닌, 색다른 맛과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 때 앤트러사이트 커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커피 한 잔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영감을 얻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Signature of ANTHRACITE COFFEE

일본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나쓰메 소세키’ 이름을 따서 만든 블렌드다. 부드러운 과일과 견과류의 향미, 밀크 초콜릿의 단맛과 밀크티 같은 여운으로 마무리된다.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과테말라 3종의 원두를 미디움 로스팅했다.

칠레의 시인이자 정치가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딴 블렌드다. 베리류와 헤이즐넛, 브라운 슈거의 맛이 특징으로, 화려한 향미와 균형 잡힌 단맛 뒤에 주스와 와인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앤트러사이트 커피의 인기 블렌드를 드립백으로 담았다. 버터 팻 트리오, 파블로 네루다, 히스토리 미스터리, 나쓰메 소세키, 공기와 꿈, 윌리엄 블레이크 6종류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 블렌드를 콜드브루로 만날 수 있다. 케냐,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원두를 다크 로스팅해서 다양한 향미와 묵직한 단맛을 뽑아냈다. 깊고 깨끗한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300ml와 1,000ml가 있다.

커피를 업으로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후배와 함께 여의도에서 ‘김약국’이라는 커피 트럭을 운영했었는데 이른바 움직이는 커피 연구소였어요. 매일 같이 새로운 원두를 테스트하는 게 일상이었죠. 단순히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생두 로스팅을 배우게 됐고, 재미에 빠져서 조금씩 볶다 보니 원두가 많아졌어요. 이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본업이 따로 있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하루에 2 시간씩 드립 커피만 판매했는데, 3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 단골도 많았고 무엇보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소통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앤트러사이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로스팅 할 때 가장 초점을 두는 부분은요?
생두의 캐릭터와 밸런스, 크게 이 두 가지를 신경 씁니다. 생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과 향이 잘 표현되도록 볶는 것이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하죠. 그리고그 원두를 섞었을 때 머릿속으로 그렸던, 의도하는 맛이 나왔는가를 확인합니 다. 저희 로스팅팀은 물론, 바리스타들도 주기적으로 커핑하며 커피의 맛을 비교, 분석합니다. 또 의도하는 맛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후 블렌딩 작업을 하죠. 이렇게 해야 원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해외 출장을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일본으로 자주 출장을 가는 편이에요. 옛날부터 일본이 아시아 커피 시장에서 선두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북유럽 커피까지 다양한 커피 회사들이 있어 시장 조사하기에 좋습니다. 1월에는 케냐와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을 방문했는데요, 좀 더 다양한 생두를 들여오고 싶어 출장을 계획했습니다. 갈수록 기후 환경 문제로 인해 커피 생두의 작황 상태가 좋지 못해요. 그런 부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앤트러사이트의 미래를 고민하고 계획해 돌아오려고 합니다. 앞으론 로스팅룸도 위치를 옮겨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대량으로 원두를 볶을 수 있도록 알아보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앤트러사이트 커피 합정점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5길 10
인스타그램 @anthracite_coffee_roasters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박다솔 기자 bbbogiii24@gmail.com